- 예루살렘
- 구 예루살렘 도보여행
- 십자가의길
- 갈릴리
- 지중해연안
- 여리고/사해지역
 
 
새벽 , 감미로운 보랏빛과 은은한 주홍색이 그리는 신비로운 서광이 예루살렘을 비칠 때 선잠에서 깨어나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순례객은 북받히는 감동에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성스런 도시 예루살렘의 하루는 이렇게 신비롭게 밝아옵니다.
여호와께서 “이곳은 영원한 나의 안식처 ( 시 87) “로 찬양하실만큼 이름조차도 ‘아름다운도시'라는 뜻의 예루살렘은 성서의고향이며
주예수님께서 사망하시고 부활의 기적을 본 영원한 성지입니다.



다윗이래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성지인 예루살렘은 과거의 성스러움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예수께서 탄생한 베들레헴과 함께 순례자의 발길이 그치지 않습니다.

  1000BCE   다윗이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다
  969BCE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다
  701BCE   앗수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 포위공격
  586BCE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함락
  538BCE   바사의 고레스왕의 칙령에 따라 스룹바벨이 예루살렘 성 재건
  515BCE   예루살렘 성전강화
  445BCE   느혜미야가 예루살렘 성과 성벽을 정비함
  332BCE   알렉산더 대왕 예루살렘 방문 , 그리이스 시대가 시작
  169BCE   그리스후예인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 세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성전약탈 , 유대교금지
  167BCE   마카비형제의 하스모니아 유대왕국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강화
  63BCE   로마제국의 폼페이장군 예루살렘 점령
  37BCE   로마제국의 비호아래 헤롯대왕이 예루살렘 확장공사
  22BCE   헤롯대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 , 미화함
  4BCE(?)   예수님탄생
  70CE   로마의 디도장군 예루살렘 함락 , 성전파괴
  135CE   바르코흐바의 지도로 유대인 독립운동 , 하드리안 로마황제 유대인 국외추방 예루살렘을 알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로 부름
  324-640CE   비잔틴 시대의 도래 ,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들이 세워짐
  614CE   이슬람 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산을 중심으로 이슬람 성지화함
  1099CE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187CE   이슬람의 살라딘장군이 예루살렘 점령
  1267CE   이슬람교인 이집트의 마멜루크 왕조가 예루살렘 점령
  1516CE   이슬람교인 오스만 터키제국이 예루살렘 점령
  1538CE   오스만제국의 슐레이만대제 11 세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 현재의 예루살렘 성벽으로 보존되어옴
  1917CE   영국의 예루살렘 점령 및 신탁통치
  1947CE   이스라엘 독립 ,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됨


예수님 당시는 물론 그 이저누터 오랜도시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지역으로 돌 하나하나에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
지금은 세 종교에 의해 철저하게 분리된채 좁은 옛성을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가르고 있지만 우리 순례객은 어느 지역이든 믿는 바대로 갈 수 있습니다 .

걸어서 동서로 15 분 , 남북으로 20 분이면 되는 옛성은 8 개의 성문 ( 욥바문 , 새문 , 다마섹 , 헤롯문 , 스데반문 , 황금문 , 분문 , 시온문 ) 을 가진 4, 018m 의 위용 어린성벽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중 폐쇄된 황금문 ( 에스겔 44:1-3) 일대를 제외한 1,950m 를 걸어 예루살렘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 옛성은 기독교 , 유대인 , 아르메니안 , 이슬람의 네지역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서로의 지역을 침범하지않고 각자의 지역으로 난 문으로만 통행하는 불침범의 법칙을 준수하며 다민족 다종교가 공존하는 , 마치 작은 지구마을 하나를 형성한 듯 특이합니다 . 옛성에는 기독교 최대 성지인 성묘교회 ( 골고다언덕 ), 유대교의 최대 성지인 성전터 ( 통곡의벽 ), 이슬람의 세 번째 성지인 성전산이 공존하며 연간 6 백만명의 순례객이 찾아드는 더 없이 중요한곳입니다 .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신 그 골고다 언덕을 에워싸고
있는 성묘교회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313 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동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비가 지은 것이 처음입니다.

이후 1,600 년의 세월을 묵묵히 , 숱한 고난과 북원을 거듭하면서 예루살렘의 흥망을
지켜봐 왔습니다 . 교회 내에는 골고다언덕 , 예수님무덤을 비롯하여 성서의 구절과
결부된 숱한 장소들 , 헬레나 왕비에게 바치는 예배당 , 십자가 파편을 찾아낸
물 저장고 등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장소들로 가득합니다 .
성지순례객이 꼭 찾는 장소입니다.
스데반문을 들어서 오른편의 평범한 가옥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성 안네교회가 맞이합니다.
성모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과 어머니 안네가 살면서 마리아를 낳았던 집터에 1140 년 십자군이 성모를 낳아준 안네에게 헌납한 교회입니다 .
정통 십자군 양식의 이 교회는 그빼어난 아름다움 덕분에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조차도 파괴 금지명령을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오스만 터키 왕실이 크림반도전쟁에서 후원해준 프랑스에 기증했습니다.
특히 이교회는 천연 음향기능으로 유명한데 찬송가를 부르면 이게내목소리인가 ? 의심이 갈 정도로 고운음이 되돌아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러 아들 이삭을 번제 지내라 하신 모리아산 (창 22:1-14) 이며 ,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짓기위해 600 세켈주고 구입했던 오르난의 타작마당 (역하 3:1) 인 해발 750m 의 수고한 산입니다 . 솔로몬 이래 헤롯의 성전이 들어서 웅장함을 자랑했으나 70 년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멸망 당할 때 5 개월간 고전했던 이유를 변명하기 위해 60m 정도의 서쪽 벽만 남겨둔 채 폐허가 되었습니다 .

691 년 옴마이드 왕조의 칼리프 (왕) 압둘 말리크가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예언자임을 확인하는 밤의 여행을 와 일곱 개의 하늘을 보고 내려왔다는 그 바위를 에워싸고 황금의 사원을 지은 이래 이슬람 제 3 의 성지로 소유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 만약 이곳에서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면 곧바로 중동전으로 연결될 만큼 이슬람 , 유대인에겐 절대절명의 중요한곳입니다 .

이스라엘 군인은 문까지만 지킬뿐이고 내부는 이슬람 자치경찰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됩니다.
내부에는 마호메트의 밤의 여행을 기념한 알 아크사 모스크 , 이삭을 번제지내려 했던 바위이자 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사다리를 놓았던 성스런 바위 , 솔로몬의 성전 지성소가 있었던 자리의 콰이트베이샘 , 알 아크사 모스크의 기둥에 짓눌려 있는 솔로몬의 마구간 , 메시아 오실때까지 영원히 닫혀있는 황금문 ,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던 성전의 담벼락 (마 4:5) 등이 있습니다.

성전산에 남겨진 60m 의벽 , 웅장함을 뽐내던 헤롯의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 마 23:37 이하 ) '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그시절의 돌담 (지하 17 단과 지상 7 단) 이 남은 흔적입니다.
70 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멸족당한 이래 흩어진 유대인에겐 이 한뼘 남은 담에서 통곡하는 것 마저 금지되었고 1878 년만에 이스라엘을 재건했으나 이곳이 요르단 땅이 되는 회한을 남겼습니다 .
그러다가 1967 년 6 월 전쟁의 승리로 근 2,000 년만에 되찾은 벽에는 전세계의 유대인 수백만이 연중 찾아와 순례하고 ,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 종교적 중심으로 경외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군인의 삼엄한 소지품검문을 통과하여 광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황금빛 이슬람 사원의 웅장한 건물 아래의 담벼락과 마주합니다.
왼편의 남자들 , 오른편의 여자들의 기도장이며 남자는 반드시 키파 (작은모자) 를 써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자는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야 합니다 .
옛날 예루살렘 성안 사람 전부를 먹일 만큼의 맑은 물을 솟구치던 기혼샘은 ‘솟아난다' ,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 요 9:7) '는 뜻으로 기혼 샘에서 솟은 물을 받아 형성된 저수지가 실로암 못입니다.
기혼샘은 제사장 사독이 솔로몬을 다윗의 노새에 태워 데려가 여호와의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곳이며 ( 열상 1:33), 실로암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 곳입니다. (요 9:1-12). 여호와를 잘 섬기고 백성을 위해 헌신적이던 히스기야 ( 대하 32:30) 가 성안 사람들을 위해 기원전 700 년경 터널을 파서 물을 끌어들였는데 1880 년 아랍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온산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몇 번이나 변경되었지만 터널 속에 새겨진 6 줄의 히브리어 비문을 통해 시온산이 확증되게 되었습니다 .
지금도 맑은 물이 흐르는 533m 의 터널을 순례객은 기념삼아 통과해볼 수도 있습니다 .
'다윗이 시온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삼하 5:7-8), 원래 여부스 족의 성채를 기원전 1000 년 다윗이 정벌하여 연합 왕국의 수도로 삼은곳으로 다윗시절의 예루살렘성입니다.
유다왕국의 멸망이후 잊혀졌다가 1850 년의 발굴작업을 통해 다윗의 시온산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기드론 골짜기 서쪽 언덕을 따라 실로암 연못까지 이르는 지역으로 여부스 시대 , 느헤미아의 성역등 유적이 발굴 보존되어 있습니다 .
푸른 감람산 기슭을 온통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가득채운 만국교회, 12 개국에서 보내온 성금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을 추모하기위해 건립한 교회입니다 . 비잔틴 시절 처음 교회가 섰으나 붕괴와 재견을 거듭하다가 1924 년 현재의 교회가 완공되었습니다 . 겟세마네란 아랍어로 ‘기름짜는곳' 이란 뜻입니다 . 감란산 전체에 올리브나무 (감람나무) 가 많이 있습니다 .
특히 교회정원에 예수님 당시부터 추정되는 올리브나무 8 그루가 세월의 아픔을 간직한채 서 있습니다 .
겟세마네 동굴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전 인간의 몸으로 느끼는 죽음을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고자 잔을 옮겨 대답해주시길 바라며 피와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 눅 22:41-42) 곳입니다 .
예수께서 사망하신후 12 년을 더 사신 성모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승천
하시고 그 육신은 부모 요아킴과 안나 , 남편요셉이 안장된 이곳에 묻힌곳으로
전해집니다.
4 세기말에 무덤을 복구하면서 처음으로 기념비가 세워졌고 534 년 최초로 교회가
들어셨으며, 1757 년부터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하고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