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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란광야 (기획연재 8)
작성자 : 관리자 2010-01-28 11:27:10

<바란광야>

바란광야는 평지와 산들이 공존하는 곳으로 석회암들이 많아서 마치 석회암 동굴 같은 모양의 괴이한 암석들을 볼 수 있다. 바란 광야를 걸으면서 바닥을 밟아보니 석회가 섞여 있어서 그런지 아주 단단한 것이 다른 광야와는 달랐다. 이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엘리야가 지나갔던 곳이기도 하다.

 

<요르단>

요르단은 구약시대에는 모압, 암몬, 아모리, 에돔 등 크게 네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지파 중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요르단에서 땅을 분배받기도 한 곳이다. 이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암만 지역과 요르단 북쪽에 살고 있다. 이들 중에 엘리야가 길르앗 출신이고 기드온이 암만 지방 출신이었다. 신약시대에는 데가볼리 지경의 가다라와 거라사, 베뢰아와 이두매 지방이 요르단에 속해 있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곳이 요르단의 요단 강변에서 발굴이 되었고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를 포함한 많은 지역들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오고간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왕의 대로를 오가며 이 지역을 장악했던 나바티안족, 로마, 비잔틴, 아랍, 십자군, 오스만 터기 등은 모두 독특한 문명의 흔적을 이 땅 여러 곳에 남겨 놓아, 이곳은 소중한 문화 유적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왕의 대로>

왕의 대로라는 말은 모세의 출애굽에서 언급된다. 민수기 20~21장에 보면 에돔 왕국과 아모리 왕국의 왕에게 왕의 대로를 지나게 해 달라고 모세가 부탁을 했다. 그러나 두 왕국의 왕들은 거절을 했다. 에돔 왕국에게 거절을 당한 모세는 광야 길로 돌아서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다. 아모리 왕국의 시혼왕은 모세의 부탁을 거절한 후에 야하스 지역으로 그의 군대를 끌고 와 이스라엘 백성을 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왕국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게 되므로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왕국을 대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행동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에돔과 모압 족속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이었다. 왕의 대로가 만들어진 시기는 이집트 12왕조의 바로 세소스트라이우스 1세가 처음 북방 무역의 길을 열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다가 신 왕국에 들어와서는 투트모스 1세 때부터 적극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펴면서 확장되어 시리아를 정복하고 유프라테스 지역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왕의대로는 헬라와 페르시아 시대에 흩어진 유대인이나 기독교도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성지를 찾아 순례의 길을 걸었던 길이며, 이슬람에 출현하면서 이집트나 시리아에 거주하는 모슬렘들이 매년 하지 때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의 길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베드윈 족들이 사는 곳을 방문>

광야에서의 목자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하다. 푸른 초장과 시냇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목자들의 삶이며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물을 갖고 싸워야 했다. 이삭이 우물을 파는 곳 마다 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이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다른 목자들도 분명 가는 곳마다 열심히 우물을 팠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판 우물에는 물이 나오지 않고, 이삭은 파기만 하면 물이 솟았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와디럼 광야에서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전통을 지켜오며 사는 베드윈 족들이 살고있다. 그들의 처소를 방문하여 숙박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체험해 보았다. 베드윈 족들은 손님이 오면 양고기를 대접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먼저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곳에 고기를 담은 그릇을 놓고 그 위에 모래를 다시 덮고 몇 시간동안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순례의 길에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가 짜거나 엄청나게 달았는데 음식이 짠 것은 너무 더워 충분한 염분이 섭취가 되지 않으면 전해물질의 불균형이 오기 때문이며 음식이 단 것은 높은 기후로 인해 열량의 소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부족이나 가족의 숫자가 많음은 곧 그들의 큰 힘을 과시하는 것이며, 힘이 없다는 것은 멸망이 코앞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롯에게 폭도들이 손님을 내어 달라고 했을 때 자기 딸을 대신 내어 주겠다고 한 것은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곧 힘이 없는 가족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탈 문화에서 남자들은 싸움에 나가므로 부족했고 여자는 너무 많아 구제 차원에서 그리고 부족 확대 차원에서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나 부인을 여러명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여자에게 집 한 칸을 사줄 능력이 될 때 부인 1명을 둘 수 있었다. 그리고 지참금 제도는 남자가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되면 장인이 가지고 있다가 딸에게 지참금을 주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광야에서의 보름달은 대 낮같이 밝아서 책을 볼 수 있을 정도였고 낮에는 너무 덥지만 밤에는 너무 조용하고 시원해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광야를 찾았고 수도원이 유난히 많은 것은 광야에서 세상 줄을 끊고 너무도 조용한 그 곳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와디름 광야를 지나면서 수르 광야는 평지가 많은 것을 보았고 신 광야는 돌멩이들이 많은 것을 보았으나 와디럼 광야는 풀 섶이 많은 것을 보면서 목축업을 하면 적당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글 · 산울교회 허영희 목사 (성민신학신학연구원장)

 


* 원문출처 : http://revivaltour.co.kr/dg/view.php?&bbs_id=board&doc_num=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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