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여행

 
 
 
르비딤 (기획연재 7)
작성자 : 관리자 2010-01-05 17:06:53

<르비딤>

단어의 뜻은 평원이라는 뜻인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영한 곳이며 신 광야와 시내 광야 사이에 있다. 최대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으로서 현재 300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에게 불평을 하였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니 이곳을 '므리바'라 불렀다. 그리고 이 평원의 북단에는 풍차의 언덕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모세가 아말렉 사람들과 싸움을 하면서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면서 손을 들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받쳐서 승리한 후 모세가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하였던 곳이다.

 

<신 광야에 외로이 서있는 싯딤 나무>

싯딤 나무는 성경에 아카시아, 조각목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 나무는 뜨거운 신 광야에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 흩어져 한 그루씩 자라고 있었는데 나무는 그리 크지 않았고 곧지 못하고 휘어진 상태로 자라고 있었으나 단단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런 고독하고 볼품없는 나무가 하나님의 법궤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고독하고 볼품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면 귀중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산(게벨 무사)>

시내산은 성지순례 일정 중에 가장 긴장되고 힘들었던 곳으로 아랍어로는 게벨 무사 '모세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모세의 시내 산이라고 불러지고 있으며 높이는 해발 2285m이다. 시내산 밑 가까운 호텔에서 새벽 1시 30분에 모닝콜로 집합하여 산 입구에 모여 간단히 짐 검사를 한 후, 오전 2시에 현지 가이드와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하는데 낙타꾼들이 따라오면서 "목사님 낙타! 목사님 낙타!"하였으나 타지를 않았는데 가이드 되시는 분이 돌산인 시내 산에서 낙타를 타다가 떨어지면 사망 아니면 불구가 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걸어가는 것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힘이 들지만 걸어 올라갔다. 엄청 힘들게 약 3시간 만에 올라가서 정상 바로 아래 가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가지고 간 라면으로 배고픔을 달래다 보니, 이미 정상엔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있었다. 왜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내 산을 오르느냐 하면 성경에는 많은 산들이 등장하지만, 시내 산만큼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시내산은 모세가 여호와를 만나 사명을 받았고, 출애굽 후에는 십계명을 받았고, 성막을 처음 친 곳이기도 하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조사했고,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이곳에서 멸망 받았고, 엘링는 이세벨을 피해 40일을 주야로 걸어서 숨어있던 곳이 바로 시내 산이다. 성지순례 중에 시내산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어떤 이가 "목사님이 간 곳은 가짜입니다. 그 곳은 시내산이 아닙니다."라고 확신에 찬 주장을 하는 분이 있었다.

이 시내산의 위치에 대하여서는 학문적으로도 논쟁이 되고 있던 것인데 요즘 들어서 다시 관심이 되고 있기도 한 산이다. 두란노 출판사에서 2007년 5월에 펴낸 김승학의 「떨기나무」로 인해서 특히 그렇다. 「떨기나무」의 저자나 독자들이 시내산의 위치를 사우디아라비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하여서는 '맞다 아니다'라고 단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고고학적으로, 지정학적으로 「떨기나무」저자의 주장이 힘을 얻기에는 그 근거나 해석이 무리가 있다는 것은 기존의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떨기나무」저자는 성경학자도 아니고, 신학을 배우지도 않았다고 책 소개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탐험이 가치가 없다고 폄하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 성서고고학적인 검증 즉 학문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고 「떨기나무」저자 이외의 독자들이 그의 주장을 보고 쉽게 시내산의 위치가 맞다 틀리다라고 단정하여서는 안 되며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나올 때까지 시내산의 위치를 단정하지 말았으면 한다.

 

<캐더린 수도원>

4세기 초 로마의 막시미우스 황제 당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였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캐더린은 용모와 학식이 출중했다고 한다. 그녀는 예수를 믿으면서 세례를 받고 황제의 우상숭배를 비난했다고 한다. 황제는 여러 학자들을 보내 회유하려 했으나 그들마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 결국 캐더린은 고문을 받고 순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시신을 천사가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수도원이 성 캐더린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3세기 중엽부터 수도사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하였고 AD330년에 헬레나 모후가 불붙는 떨기나무 자리에 성모 마리아에게 교회를 헌납하게 되었다. 비잔틴 시대에 지금과 같은 장방향의 수도원을 건설하였는데 AD557년에 완성되었다. 7세기 때 아랍인들이 점령을 해서 수도사들이 30명 가량으로 줄어들었다가 수도원장이 모하메드에게 수도원에 대한 보호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어져서 수도원이 유지되게 되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십자군들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수도원은 서방세계의 기독교와 아랍 지역의 모슬렘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했을 때 이곳 수도원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 곳은 이콘이라고 불리는 목판성화의 보고이며 2000여개의 이콘이 보관되었다. 그리고 4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어 성서사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의 일부분이 캐더린 수도원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2009년 9월 2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 판의 보도의 따르면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리스 학생 니콜라스 사리스(30)는 세인트 캐더린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성경 사본들의 사진을 수집하던 중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의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부분을 찾아냈다. 코덱스란 동물가죽에 그리스어로 적힌 성경 필사본을 일컫는 말인데, 350년경 제작된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 필사본 중 하나로 올해 새계 학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디지털화 돼 온라인에 공개된 바 있다. 새로 발견된 부분은 구약성경의 여호수아가 시작되는 1장 10절로, 여호수아가 이집트로부터 탈출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어린이들에게 설교하는 이야기가 실린 부분이다. 이 수도원에는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조각이 발견된 제본을 만든 2명이 제작한 제본이 최소 18권은 더 소장돼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글 · 산울교회 허영희 목사 (성민신학신학연구원장)


* 원문출처 : http://revivaltour.co.kr/dg/view.php?&bbs_id=board&doc_num=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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