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여행

 
 
 
시나이 반도 (기획연재 6)
작성자 : 관리자 2010-01-05 15:37:41

<시나이 반도>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 사이에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서 남부는 험한 산악지대이고 북부는 광야로 이루어져 있다. 모세가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통과 한 곳이고 아라비아의 유목민 아말렉족과 첫 싸움을 벌인 곳이며 이스라엘 자손이 40년동안 떠돌며 하나님이 주시던 만나, 메추라기와 반석의 물을 공급받던 곳이기도 하다. 시나이 반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이곳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일컬어지도록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이 되었다. 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에 반발하여 수에즈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였고, 1967년 6일 전쟁(제 3차 중동전쟁)이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73년 시나이 반도 수복을 위해 아랍연합군에 의해 욤 키프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고, 결국 이집트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가 시나이 반도 탈환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4부터 1975년 병력 분리협정에 따라 연간 약500만t의 산유량을 내는 유전지대를 포함한 반도의 일부가 이집트 령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1977년 11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과 1978년 9월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선한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시나이 반도를 다시 양도하게 되고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 반도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게 된다. 결국 1982년 4월에야 시나이 반도가 완전한 이집트의 영토가 되게 되었다. 시나이 반도에 나 있는 아스팔트 도로는 이스라엘이 점령했을 때 만든 도로라고 한다.

 

<마라의 샘>

마라의 뜻은 '쓰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최초로 숙영한 곳이다. 수에즈 운하 동남쪽 약 72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옛날의 마라 지역을 오늘날의 '아윤 무사'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이집트 말로 '아윤'은 우물이란 뜻이고 '무사'란 모세를 말한다. 따라서 '모세의 우물'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이곳 모세의 우물은 도로 좌측에 있고 오아시스 지역은 우측 모래벌판에 수십 그루의 야자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곳 물이 써서 물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한 나무를 우물에 던져 쓴물을 단물로 바꾸었다. 이 나무가 쥐엄나무였다고 한다. 쥐엄나무는 염수를 달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그 열매는 단맛이 나는 특징이 있다. 물이 쓴 이유는 홍해 바로 옆이어서 농축된 바닷물이 스며든 물이기 때문이다.

 

<신 광야>

수르 광야에서 신 광야 가는 길은 계곡사이를 오래동안 자동차로 이동을 하는데 Abuzinema(신 광야의 현재 이름)에서 점심을 메추라기와 만나 대신 닭고기와 쌀밥으로 만든 도시락으로 대신하였다. 8월의 뜨거운 신 광야를 걸으며 물 없는 뜨거운 광야를 잠깐 경험을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모세가 가나안으로 간다고 데리고 왔다가는 뜨거운 광야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했을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은 광야에서 살아남았을까? 만나와 메추라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어떠했을까? 모두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시내 산에 이르기 전에 있는 광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 광야에 이르러서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있을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느냐"하며 불평을 했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듣고 저녁에 메추라기를 아침에는 만나를 주어 양식으로 먹게 했다. 만나는 인수대로 하루에 한 오멜씩 내려주었다. 평일에 한 오멜을 넘게 거두어 남으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못 먹었다. 그러나 6일에는 다음날 안식일 분까지 2일분을 거두어도 벌레가 생기거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만나는 시내 광야와 요단 동편에 이르기까지 40년간 내려주어 양식으로 삼게 하였으며 가나안 지경에 이르러 그쳤다. 그리고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에서 몽둥이로 모세를 치려하지 않고 돌멩이로 치려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신 광야를 보고서야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신 광야에는 나무들은 거의 없고 돌맹이들이 많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치려했던 것이다.

 

글 · 산울교회 허영희 목사 (성민신학신학연구원장)


* 원문출처 : http://revivaltour.co.kr/dg/view.php?&bbs_id=board&doc_num=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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